정의는 외로울까?
영화 「TILL (틸)」 을 보고 – 김 봉 순
며칠 전 나는, 착찹한 마음에 혼자 영화를 보러 갔다. 평일 낮인지라 관객은 나 하나뿐이어서 은근히 좀 거시기(?) 했는데, 다행히 영화 시작 직전 한 여성이 급하게 뛰어 들어와 다소 안심이 되었다. 넓고 텅빈 영화관의 적막은 그것 자체가 때론 폭력처럼 느껴져 싫지만, 그럼에도 나는 가끔 혼자서 영화를 본다.
영화 제목은 「TILL」 이다. 이 어휘를 분석하면 ‘ …이 되기까지, 혹은 …에 이르기까지’ 이다. 그런데 제목이 심상치 않다. 영화에 등장하는 아들의 극중 이름이, 「틸 에밋」이라서 그 이름에서 제목을 차용했는지 모르지만 내 생각에는 이중적인 의미로 제목을 그렇게 지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 감독은 85년생 나이지리아 여성인, ‘치논예 추쿠’ 인데 영화에 비해 그녀에 대한 정보는 미미해 보인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시대적 배경은 1955년이고, 장소는 미국이다. 북부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14살 된 아들과 함께 사는 워킹맘인 흑인 여성 이야기로, 그녀 남편은 유럽에서 미군 작전 중 사망한 군인이다. 그녀는 남편의 유품인 반지를 가끔 들여다보며 하나밖에 없는, 애인이자 친구인 아들 틸 에밋(제일린 홀)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며 살아간다. 여름을 맞아 그동안 소원했던 삼촌 등 여러 사촌들을 만나러 틸 에밋은 기차를 타고 멀리 남부 미시시피주로 떠난다. 아빠의 그 자랑스럽고 큼직한 반지 (결국 그 반지가 나중에 아들을 증명하는데 유효) 를 낀 아들을 태운 기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던 메이미(다니엘 데드 와일러)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
사촌을 만나러 갔다가 싸늘한 죽음으로 돌아온 아들, 틸 에밋! 아들은 그녀에게 있어 삶의 이유이자 온 우주였다. 그런 아들이 백인의 린치로 인해 어이없게 죽었으니 - 메이미는 이 참혹한 현실 앞에서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리기로 작정한다. 미시시피에 있는 그녀의 아들 시신을 시카고로 데려온 메이미는, 아이가 평소 좋아했던 양복을 아들에게 입힌 다음, 린치당하고 물에 부은 아들의 시신을 공개하기에 이른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청하고 기자들이 몰려오고 야단법석이다. 메이미를 진정으로 도와주려는 사람도 있지만 그 힘은 극히 미미하고 제한적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엔 정치적으로 매도하며 이용하려고 메이미를 설득하는 작자도 있고 - 언론은 메이미에게 매일매일 불리하게 작용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메이미의 투쟁은 이어지는데….
그냥 매장하면 될 것을, 사건을 크게 벌인다며 한쪽에서는 메이미를 지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메이미는 한결같이 ‘나는 엄마니까,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이니까,’ 라고 응수하며 가해자를 향해 아니, 미국 전체사회를 향해 저항하기에 이른다. 피부색으로 정의를 가리던 시대 메이미, 그녀의 용기있는 울림은 아직도 내 귀에 쟁쟁하다.
미국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주의가 낳은 비극으로 모든 언론은, 백인들을 옹호하며 감싼다. 피해자인 메이미를 향해, 아들의 시신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못된(?) 엄마로 폄하하는가 하면, 결국 백인 재판부, 백인 배심원들에 의해 용의자들은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난다.
영화 엔딩 크레딧 자막에 이런 글이 올라간다. 가해자들은 그 뒤 기소되지 않고 아무 일 없이 잘 살다 죽었다, 고. 반면 메이미는 아들의 사고 이후 투쟁가로 돌아서 흑인 인권운동가로 할동하다가 2003년엔 죽었다고 전해 진다. 틸 에밋과 그의 엄마 메이미는 미국 사회에서 여전히 지금도 회자되며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시인이자 가수인 밥 딜런은 1962년에 발표한 ‘에밋 틸의 죽음(The Death of Emmett Till)이란 곡을 통해 ’에밋 틸‘의 죽음을 노래했다.’고 전해지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역시 2022년 최고의 영화 열 편에 「TILL」을 뽑았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마음이 더 착찹해졌다. 카타르시스를 기대하며 극장에 갔는데 말이다. 그러면서 작금의 우리 사회와 결합된 민낯의 키워드, 이를테면 나그네, 검은돈, 검찰, 난민, 이민, 이주민, 외교, 언론플레이, 탈북민, 침묵, 학폭 등등… 여러 어휘들이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따라붙어 내 머리를 휘감는 듯했다.
나는 영화 볼 땐, 객관적인 시선을 잘 유지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나도 모르게 몰입되어 눈물샘이 해제되었다. 넓은 영화관에서 서로 모르는 두 여성의 흐느낌만이 가득 차는 이색적인 경험을 오랜만에 해 본 듯하다. 억장이 무너지는 듯해서!
정의란 무엇인가? 진정 외로운 싸움일까? 옳은 건 옳다고, 옳지 않은 건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