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만들어지다
『노년의 부모를 이해하는 16가지 방법』을 읽고 - *
최근 오롯이 남편과 나를 위한 텍스트를 골랐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한다면 우리 같은, 즉 서서히 혹은 빠르게 나이 들어가며 처음으로 노인이 되어가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선택했다는 게 더 옳다. 그리고 다 읽은 다음, 우리를 이해해 달라는 의미로 아들에게 선물할 예정이다.
일본인인 저자는 다년간 안과의사로 일했다. 고령자를 중심으로 안과 치료를 하면서 수없이 겪었던 에피소드를 적었는데 그들(노인)의 고민과 증상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면서 – 고령자 가족을 위해, 고령자와 일하는 사람, 고령자 본인, 그리고 나이 듦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위해 이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제목처럼 노년의 부모를 이해하기 위한 16가지 방법을 쳅터 별로 기술했는데 큰 글씨와 더불어 비교적 짧고 쉬운 문장이라서 가독성이 좋다. 알고 보면 누구나 반드시 한번쯤 다 겪었거나 겪을 거라고 생각되며, 특별한 건 없다. 다만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
* 노인이 자주하는 난처한 행동 중 -
첫째, 본인에게 불리한 말은 못 들은 척한다.
결론은 오해다. 다만 중저음의 목소리로 또박또박 눈을 마주보며 천천히 얘기하라는 거다. 목소리가 높을수록 특히 하이 톤의 여성목소리는 듣기 어렵다. 나이가 들면서 음역에 변화가 생긴다. 우리 부부역시 가끔 이럴 때 있다. 설거지 하는 내게 남편이 뭐라고 얘기 했다는 데 난 전혀 듣지 못했다. 이것은 남편도 마찬가지다.
우리 부모님은 텔레비전시청을 하니까 청각에 이상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난청인 경우도 TV는 시청할 수 있음도 인지하라고 저자는 권한다.
둘째, 갑자기 “시끄럽다”고 화를 낸다. 그래놓고 본인들은 큰 소리로 말한다.
지하철에서 종종 보는 모습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저렇게 공공장소에서 교양 없이 마구 떠드나’ 하며 인상 썼는데 – 이 역시 귀가 잘 안 들리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니까 본인 목소리가 크다는 걸 모른다. 우리 집 역시 텔레비전 볼 때 보통 음량이 예전보다 높아진 건 사실이다. 그래서 집중할 일이 생길 땐 TV보는 남편을 향해 조용히 해 달라고 소리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즉 청력이 문제라는 말이다.
셋째,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고 과거를 미화한다.
나이가 들면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렇다면 기억력은 떨어지는데 이게 가능한가, 라는 질문이 생길 수 있다. 그것은 고령자라고 해서 기억력이 다 떨어지는 게 아니고 단기기억에 비해 장기기억은 대체로 오래 유지된다는 점에서 – 어제 저녁에 뭘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반해 오래전에 했던 일은 기억한다. 장기기억중에서도 여러 번 반복했던 것을, 더 오래 기억한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다.
과거를 미화하는 것도 나쁜 의도로 그런 건 아니다. 창조주의 선물인지, 나쁜 기억은 지워지고 좋은 기억은 남기 쉽다, 고 저자는 말한다. 여기에 인체의 비밀이 숨어있다. 즉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조금이라도 만족시키기 위한 긍정의 에너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똑같은 얘기 좀 그만하세요,’라고 화를 내면 안 된다. 그럴 경우 노인은 ‘부정당했다’로 인식한다. 즉 자신이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해서 상대가 화를 냈다, 가 아니라 ‘이유는 모르는데 상대가 화를 냈다’, 로 입력된다는 것!
넷째, “나 따위 있어봤자 짐이다” 하고 부정적인 말만 한다.
‘얼른 죽었으면 좋겠다’, 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경우다. 나이가 들면 자신이 유용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처음에는 듣기 좋은 듯 하나 아니다. 마치 밥만 축내는 식충이 같단 생각을 한다. 그래서 꼭 생활비를 벌라는 얘기가 아니라 뭔가 화단을 가꾼다든지 부담되지 않는 범위에서 자신만의 취미나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한다.
노인들의 부정적인 발언을 막는 것은 역효과다. 주위 사람들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세상은 넓고 배울 것과 할 일은 부지기수니까.
다섯째, 애써 준비한 음식에 간장이나 소스를 흠뻑 뿌린다.
흠뻑 뿌린다? 어느 정도 공감한다. 한 때 시어머니의 모든 반찬이 내겐 달거나 짰다. 특히 커피는 설탕물 같았다. 그런데 요즘 내 반찬이 점점 짜진다. 커피 역시 블랙보단 달달한 믹서가 가끔 생각난다. 모든 감각이 흐려지는데 미각이라고 견딜까. 오랫동안 맛에 길들여진 혀는 이제 제 기능을 다한 듯 보인다.
저자는 염분대신 다른 소스를 사용하거나 반찬마다 맛에 강도를 두고 어느 건 싱겁게 하고 어느 한 가지는 간을 맞추라고 권한다.
여섯째, 말수가 적고 무뚝뚝하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면 오히려 입을 닫아버린다.
이런 경우 ‘말수가 준다 – 주위와 거리를 둔다 – <고립>이라는 파멸의 길’
나이가 들면 말수가 줄고 까칠해진다. 이유는 성격이 변한 게 아니고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거나 쉬 피로해지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남성이 여성보다 목소리를 내기 더 어려워지는데 – 목소리가 크든 작든 별문제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타인과의 대화가 줄면 집안에 틀어박히게 된다. 타인과의 대화가 즐겁지 않으니 만남 자체를 꺼린다. 그러다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이럴 때 주위사람들은 ‘당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싶다,’ 는 표시를 하는 게 좋다. 그가 마음을 열도록 귀를 기울인다.
일곱째, ‘이거’ ‘저거’ ‘그거’가 많아서 설명을 알아듣기 어렵다.
위의 현상이 반복되는 것은, 기억력 감퇴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억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령자라고 머리가 다 나쁜 건 아니다. 사물을 기억하는 능력은 떨어지지만 오래 산만큼 기억하고 있는 양이 많아서 즉 판단 재료가 너무 풍부해서 거기서 하나 꺼내기가 어렵다는 얘긴데 – 개인적으로 충분히 공감된다.
도대체 이거 혹은 저거가 뭐냐고 다그치면 고령자는 움츠리게 되며 대화의 창을 닫아 버린다. 나 역시 ‘거시기’, 라는 말을 곧잘 사용한다. ‘간장이 떨어지고 설탕이 떨어져도 거시기가 떨어졌다고 거시기를 사야 한다고 그래서 거시기에 가야 한다고 …,’ 그렇게 중얼거릴 때 무지 많다.
저자는 권면한다. 얘기하며 산책하거나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해서 뇌를 활성화 시키란다.
여덟째,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었는데도 천천히 건넌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보폭이 젊은 날에 비해 좁아졌고 눈꺼풀이 쳐져 신호등이 보이지 않는데서 오는 문제다. 신호등을 보지 않는 건 넘어 질까봐 자기 발아래를 보기 때문이다. 특히 나 같이 키 작은 사람이 사고 나면 치명타라니… ! 그러니까 신호 중간에 제발 건너지 말라고 당부, 또 당부 – 신호등은 노인을 고려하지 않는다.
아홉째, 입 냄새가 심하다.
아… 이건 남녀 누구나 주의해야 할 사항이다. 나는 기차 여행을 좋아한다. 특히 혼자 가는 장거리 여행엔 기차를 꼭 애용한다. 다 그렇진 않지만 옆 좌석에 중년남자가 앉으면 거의 죽음(?)이다. 그 남자가 입을 열 때마다 시궁창 냄새가!
문제는, 본인의 입 냄새를 알기 어렵다는 거다. 입 냄새 원인 중 85%는 입안에 있으며 15%정도는 내장에 있다. 치주염과 충치 치료는 말할 것 없고 심한 경우 사탕이나 껌을 씹으라고 권한다. 그리고 입으로 호흡하면 건조해져서 입 냄새가 심하게 난다며 입안을 자주 물로 헹구어 건조해지지 않도록 유의하란다.
열 번째, 약속을 하고 새까맣게 잊는다.
아쿠, 우리 부부 얘기 같다. 부부싸움 7할을 차지한다. 남편에게 무슨 얘기를 하면, 첨엔 알았다고 얼버무리고 나중에 물으면 본인은 첨 듣는 얘기란다 – 부부간에 증인을 세울 수도 없고 녹음을 할 수도 없는 입장! 그런데 문제는 나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이미 말했다는데 나는 금시초문이니 도찐개찐…!
이 역시 나이 들어 기억력이 약해졌다고 치부하기엔 너무 성급하다. 고령자에게 말을 전할 땐 가능한 주위 잡음을 줄이고, 내가 당신에게 말하고 있음을 주지시킨다. 외래어나 줄임말을 삼가고 문장은 짧게-. 반드시 이름을 언급한 다음 얘기를 전하라며 저자는 간곡히 부탁한다.
열한 번째, 놀란 만큼 어이없는 장소에서 넘어진다.
어린아이처럼 고령자의 안전사고도 집안에서 젤 많이 일어난다. 평균 65세 이상 사고 가운데 77%가 집안에서 일어나며 큰 사고로 이어질 확률이 젊은 사람보다 2배나 많다. 사고 중 굴러 떨어지거나 넘어짐이 55%가 넘는다. 작년 여름 나 역시 기상하면서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 달포가량 반 깁스를 한 바 있다.
고령자는 균형 잡는 일에 서툴거나 눈의 영향이 크다고 말한다. 몸을 앞으로 숙이니 잘 넘어질 수 있다. 대안으로 매일 눈을 크게 뜨거나 꼭 감는 연습을 하며 – 한 발 서기 연습으로 몸의 균형을 맞추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강권한다. 늙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지만 그 ‘어쩔 수’, 에 너무 얽매이지 말길!
열두 번째, 돈이 없다면서 낭비가 심하다.
전에 지방에서 서커스 쇼(?)가 매일 진행되던 때 얘기다. 친정동네 아낙네들 누구나 할 것 없이 대용량 휴지며 살림에 필요한 기구들을 한 아름씩 들고 다녔다. 알고 보니 쇼를 빙자한 비싼 물건 팔기였다. 주로 건강식품이었는데 – 출처도 불분명한 제품들을 상상이외의 가격으로 판매했고 또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구입했다고 들었다.
이렇듯 자식들이 주는 용돈을 모아 한 입에 퐁당, 하는 일이 의외로 잦아 자식들과 갈등이 많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래서 아예 자식에겐 물건 구입했단 얘기도 하지 않는다나?
여기 책에 등장하는 노인도 마찬가지다. 저자의 말 중 ‘인간은 살아온 세월이 길수록 타인을 쉽게 믿는다’, 라고 했는데 개인적으로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강매 후 도주하는 악덕 상인이 많음은 일본도 마찬가진가 보다.
열세 번째, 나쁜 병에 걸린 걸까 의심될 만큼 식사를 하지 않는다.
고령자에게 말랐다, 라는 말은 공포감을 심어줄 만큼 위협감을 준다는데 – 난 여전히 말랐다, 란 말이 듣기 좋은데 아직 고령자가 아니어서 그런가 보다. 저자는 말한다. 식사를 맛있게 하려면 칫솔을 새것으로 교체하란다. 새 칫솔과 입맛과의 상관관계를 잘 모르겠으나 – 치주예방을 해야 입맛이 도는 모양이다.
열네 번째,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심하게 사레들리거나 계속 가래를 뱉는다.
요즘 내게 빈번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심하진 않지만 가끔 가래가 나와 좀 민망하다. 특히 식사 중에 가래가 나오면 얼른 다른 장소로 옮겨 뱉지만 소리는 들린다. 아무리 남편이지만 사실 미안할 때 있다. 아들 녀석은 그런 나에게, 매너 없다고 구박하곤 했었다. 근력이 좋을 때야 기침 한 두 번으로 가래를 해결했지만 나이가 들면 밀어내는 힘도 약해진다.
이물질이 목에 걸렸을 때 일단 등을 두드리란다. 그리고 호흡근을 단련하고 입안을 촉촉하게 해두라고 저자는 전한다. 호흡근 단련은 간단하다. 코로 3초에 걸쳐 공기를 들어 마시고 6초 동안 입으로 뱉어내는 연습을 한다.
열다섯 번째, 한밤중에 일어난다.
인간은 누구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 밤낮이 바뀌면 아이나 어른이나 힘들어진다. 전에 쓴 소설 중, 야밤에 잘 일어나는 노인 이야기로 설정한 바 있는데 – 시어머니를 관찰한 거에서 기인했다. 어머니는 토막잠처럼 낮에 자주 주무시는 듯 했다.
소음, 가려움, 통증들이 수면을 방해한다. 모든 질병은 밤에 더 활성화 되는 것 같다. 거기에 나는 건강하지 못한 신장으로인해 화장실 출입이 유달리 잦다. 그런 연유로 나 역시 한밤중에 일어나는 경우 있음을 시인한다. 그러나 졸리지 않은데 일부러 자려고 하지 말라고 저자는 권한다. 그리할 때 잠이 오히려 도망간다고!
열여섯 번째, 그렇게 계속 나올까 이상할 정도로 화장실에 자주 간다.
위 열다섯 번째와 맥을 같이 하는 듯하다. 고령자는 1시간 이상 참지 못한다고 했는데 – 고령자가 아니라도 나 같이 신장에 문제 있는 경우 참기 정말 어렵다. 지금도 나는 가끔 공포스런 꿈을 꿀 때 있다. 오줌 마려워 잠이 깨는 건 말할 것 없고 어느 땐 자리에 실례하는 꿈까지….
화장실에 갈수록 더 가고 싶어진다고 말하는 저자는, 이렇게 충고한다. ‘화장실에 자주 가면 습관이 되어 방광에 소변이 조금만 차도 화장실에 가게 된다. 아주 급하지 않으면 참도록 훈련하는 편이 더 좋다.’ 소변을 참으려면 골반저근이라는 근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인간의 배출욕구가 이런다고 나아질까 하는, 의심도 들지만 노력은 하겠다.
현재 우리나라는 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기 일보직전이다. 노인들을 이해하기 위한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면서 정리해봤다. 그(분)들도 처음 늙어보는 거라서 시행착오가 잦을 것이니…. (*)
* 『노년의 부모를 이해하는 16가지 방법』, 하라마쓰 루이 지음. 홍성민 옮김. 뜨인돌.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