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와 가나안
이진희 목사님의 “가나안에 거하다”라는 책을 보면, 광야와 가나안의 차이점에 대해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심을 가장 잘 나타내는 구약 사건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해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된 사건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광야로 탈출해서 오랜 세월의 광야 여정을 거쳐 결국에는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광야와 가나안은 많이 다릅니다. 광야에서는 가나안처럼 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광야에서는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합니다. 광야에서는 장막에 머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합니다. 이슬 한 방울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광야에서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합니다. 광야는 하나님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은 하나님이 없이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곳입니다. 광야에서는 하나님만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들어와서는 수많은 우상들 가운데 믿음을 지켜야 했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곳입니다. 광야를 지날 때는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나 가나안에서는 은혜 위에 은혜가 필요합니다. 광야에서보다 더 큰 은혜가 필요합니다. 광야보다 영적으로 더 유혹받고 도전받는 곳이 가나안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에서는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농사를 지으려면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 합니다. 그런데 가나안 사람들이 듣자 하니 비를 내려 주는 신이 있는데 그가 바로 ‘바알’이었습니다. 가나안에 살아가려면 바알 신을 잘 섬겨야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가나안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바알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돈이 가장 힘이 있습니다. 다들 돈, 돈 하며 살아갑니다. 우리의 삶을 알게 모르게 지배하는 것이 바로 돈입니다. 하나님보다 은행 계좌의 돈을 더 신뢰합니다. 돈이 하나님의 수준까지 올라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바알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물질 만능주의의 바알 종교를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가나안보다 더 죄악이 관영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죄와 싸우며 살아가기 위해, 죄와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는 은혜 위에 은혜가 필요합니다.
광야를 지날 때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만나를 내려 주시고, 하나님이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이 반석에서 물을 터져 나오게 하십니다. 그래서 광야에서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으며, 하늘을 바라보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에서는 하늘만 쳐다보거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의 노력만으로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이도 좋은 집과 많은 재산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진짜 신앙은 가나안에 들어가 봐야 알 수 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면 우리의 신앙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비록 많은 유혹과 영적인 치열한 전쟁이 있는 이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하루하루의 삶이 광야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하나님을 절대 의지하고 신뢰하면서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