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을 도려내는 수술
‘튤리안 차비진(Tullian Tchividjian)’ 목사는 그분의 저서 ‘예수로 충분합니다(Jesus All)’이란 책에서 ‘우상숭배란 간단히 말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 위에 우리의 정체성을 지으려는 시도’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어떤 우상을 섬기는지 간단하게 확인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의 질문에 대답해 보는 것입니다. “이것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는가? 다시 말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어떤 것에 의미를 찾는가?”
우상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우상은 그 자체로는 좋은 것이요 하나님의 선물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배우자나 자녀, 꿈과 희망, 일과 성공, 외모와 평판은 전혀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것을 삶의 궁극적인 대상으로 삼을 때 발생합니다. 만약 어떤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의 칭찬과 인정에 철저히 의존해서 살아왔다고 합시다. 칭찬과 인정 그 차제는 전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자신의 자존감의 주된 근원으로 삼고 ‘칭찬과 인정’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순간, 그것은 우상으로 변해 버립니다.
우리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그분보다 더 소중히 여기지는 않습니까? 때때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고난과 고통의 시기를 주셔서 우리의 삶에서 우상을 도려내는 수술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폴 트립(Paul Tripp)’이라는 기독교 저술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지금 겪는 실망이나 낙심, 슬픔은 당신의 마음이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보여 주는 창문과도 같다” 예수님은 포로를 자유롭게 하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속박에서 풀어 주려고 오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의 우상을 보이는 족족 부수시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