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의심
- 가정교회사역원장 최영기 목사 칼럼 인용(2016.1.) -
그리스도인의 기도 생활에서 의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응답이 오기는 하는데, “이것이 진정 기도한 결과인가, 아니면 어차피 이루어질 일이 이루어진 것인가?” 라는 의문 때문에 힘들 때가 있었습니다. 아픈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서 치유가 일어났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고 믿기는 하지만, 이 치유가 기도 때문이 아니라 약 때문이거나 의술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음을 느낄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모세의 영도 하에 애굽을 탈출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비슷한 의심에 사로잡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는 것을 목격하고, 홍해가 눈앞에서 갈라지는 것을 경험했으면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불평을 늘어놓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기적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자연적인 현상이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행태를 보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기반이 되는 예수님의 부활에도 의심의 여지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육체적으로 부활하셨다는 증거는 너무나도 명백합니다. 18세기 하버드 대학의 왕립 법학 교수였고, 가장 중요한 법률 서적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증언법에 관한 논문(A Treatise on the Law of Evidence)’을 저술한 그린리프 박사(Dr. Simon Greenleaf)는 예수님의 부활하신 증거를 제시하면, 미국 어느 법정에서라도 배심원들이 제시된 증거에 근거하여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과학은 반복되는 자연현상을 관찰하여 원칙을 발견하는 학문인데, 기적은 단 한 번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과학적인 방법으로는 증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과학적인 방법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의 증언과 이에 관한 문서의 신빙성에 근거하여 사실 여부를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의심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하셨다고 인정하기보다는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가서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다는 거짓말을 믿을 수 있었고(마 28:11-15), 부활하신 예수님을 500명이 목격했지만(고전 15:3-6),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이 약속하신 성령님의 강림을 기다릴 때에는 120명만 참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행 1:12-15). 100% 확실한 것을 인정하는 데에는 믿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실이 아닐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기 때문에 믿음이 귀한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경험하는 초자연적인 역사는 증명이 되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기도가 응답 되었을 때 응답이 기도 때문이라고 ‘증명해’ 보일 도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고(요 16:24),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했고, 기도한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셨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전지전능하신가?” “하나님께서 진정 나를 사랑하시는가?”, “하나님이 과연 살아 계신가?” 살다 보면 이런 의심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이런 의심이 생길 때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고 자책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의심한다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다는 뜻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의심도 없습니다. 의심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생긴 의심을 잘못 처리할 때 죄가 됩니다. 의심이 생길 때에는 이에 휘둘리지 말고,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과거에 베풀어 주셨던 은혜를 다시 한 번 상기하며, 다시 믿기로 결심하면 됩니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는 것이 사실이요 진리라는 것을 삶에서 체험케 해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