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은혜, 그리고 은혜
세월이 지나도 많은 사람에게 울림을 주는 좋은 책들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필립 얀시의 책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What's So Amazing About Grace?》입니다. 이 책에는 은혜의 본질을 보여 주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네덜란드의 유명한 작가이자 신앙인인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의 간증입니다.
그녀의 가족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유대인 박해를 보며,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인들을 숨겨주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발각되어 온 가족이 강제수용소에 끌려갔고, 그곳에서 코리는 사랑하는 언니를 잃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녀는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강연을 하며 유럽 여러 곳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강연이 끝난 뒤 한 남자가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 그녀의 온몸이 얼어붙었습니다. 그 남자는 바로 자신과 언니가 끌려갔던 수용소의 간수였던 것입니다. 그는 강연을 들은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방금 말씀한 대로, 하나님이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에게도 직접 용서를 받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손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그 순간 코리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눈앞에 선 그 사람은 자신의 언니를 고통 속에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원수였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또 다른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도 은혜로 용서받지 않았느냐? 네가 받은 그 은혜를 흘려보내라.” 코리는 마음속에서 고통스러운 씨름을 했습니다. 그러다 결심했습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로는 할 수 있다.’ 떨리는 손을 억지로 내밀어 그 사람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전심으로 용서합니다.” 그 순간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녀의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얀시는 이 이야기를 통해 은혜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흘러갈 때, 그 진짜 능력이 드러난다. 용서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적인 계산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은혜는 인간의 힘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역사이기에,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자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은혜로 용서받았습니다. 그 은혜가 우리를 살렸다면 이제는 우리가 받은 은혜를 흘려보내는 삶을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원할 것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상처 주고받은 관계들 속에서 은혜가 드러나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은혜는 우리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해집니다. 우리가 먼저 받은 은혜를 기억할 때,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도 은혜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세상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코리 텐 붐이 원수를 용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인 것 같습니다. “나도 은혜로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 은혜의 빚진 자임을 늘 기억합시다. 그리고 받은 은혜를 흘려보내는 삶, 곧 은혜가 드러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